근현대 한국화의 대가인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전 생애와 화업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2025년 4월 18일부터 개막되어, 김기창의 작품 세계와 미술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는 김기창의 작품 99점과 그의 부인인 여류 화가 우향 박래현의 작품 6점, 그리고 부부의 합작 작품 1점이 출품되었다. 총 106점에 달하는 작품은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그의 예술적 변천사를 아우르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그가 걸어온 예술의 여정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운보 김기창이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위해 시도한 선구적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김기창은 후천적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로 인한 침묵 속에서 더욱 예민한 시각적 심미성을 발전시켰다. 그는 고요함 속에서 더욱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창조해냈으며, 이는 그의 대표작인 '청록산수'와 같은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난다.

 

김기창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1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그는 1930년대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여 여러 차례 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특히 1931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창덕궁상을 수상하는 등 점차 미술계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광복 이후 그는 여류 화가 우향 박래현과 결혼한 후,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실험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특히 일상을 그린 풍속화, 입체주의적 화면 구성, 그리고 반추상적 작품들을 선보이며 당시 한국미술의 현대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김기창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예수의 생애' 시리즈는 195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으며, 이는 예수의 출생부터 부활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는 이를 조선 시대 배경으로 변형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작품의 전개뿐 아니라 복장, 인물 등의 세밀한 묘사에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김기창의 미술적 정체성과 실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기창의 대표적인 영모도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다. 특히 1950-60년대 추정작인 '군마도'와 1972년작인 '밤새(부엉이)'는 그의 역동적이고 기운생동한 필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외부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김기창은 그만큼 더욱 집중된 시각적 감각으로 작품을 창조했으며, 이를 통해 감정의 폭발적인 표현을 담아낸다. '군마도'는 거침없고 역동적인 필치로 기운이 넘치는 말과 부엉이를 묘사하여, 김기창의 영모도가 갖는 독특한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또한, 1970년대에 그려진 '비파도'와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 등의 화조도 작품은 그의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김기창은 거침없이 붓을 휘두르며, 비범한 구도와 섬세한 묘사로 풍성한 색감을 만들어내며, 전통적인 한국화의 기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김기창의 부인 우향 박래현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는 것이다. 특히 '등나무와 참새'라는 대형 합작 작품은 그와 우향의 협업을 잘 보여준다. 우향은 등나무를 그린 후, 김기창이 참새를 그리고 글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품이 완성되었으며, 두 사람의 예술적 조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운보 김기창은 자신의 화풍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발전시켰으며,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의 화업은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쌓아온 70년간의 작품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관람객들에게 그의 미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전시는 2026년 3월 22일까지 진행되며, 김기창의 작품 세계와 그의 예술적 영향을 받은 우향 박래현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